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세 칸세코 (문단 편집) == 선수 경력 == [[파일:external/70360d389b80e73d81bc6b1c507a1fb4e3113e91fd885c8755e744aa29e29b23.jpg]] 배쉬 브라더스의 [[마크 맥과이어]]와 함께.(좌 : 맥과이어, 우 : 칸세코) 메이저리그에서 최초의 [[40-40 클럽]]에 가입한 선수가 다름아닌 이 칸세코. 지금의 우락부락한 근육질 모습을 보면 과연 그런 역사가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[* 사실 40-40 클럽 가입이라는 마일스톤을 위해 16개의 도루실패를 기록하여 71.4%라는 성공율을 보인지라 칸세코의 40도루가 세이버 상 손익분기점인 70%는 넘겼지만 엄격한 의미에서의 생산적 도루 성공율인 75%는 기록하지는 못했다. 물론 70% 정도를 넘기면 의미있는 도루 기록이라고 판단하기에 그 자체로 폄하될 기록은 아니며, 오히려 그가 약쟁이이기 때문에 이 기록이 인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.]지만, 당시에는 [[리키 헨더슨]]과 함께 [[메이저 리그 베이스볼]] 최강의 외야진을 구축했다.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[[마크 맥과이어]]와 함께 오클랜드의 강력한 타선을 이끈 주역이었다. [[마크 맥과이어]]와 그를 가리켜 배쉬 브라더즈(Bash Brothers)라고 했다. [youtube(QixQMUu4CKI)] 수비는 잘 못하는 편이어서, [[텍사스 레인저스]] 시절인 1993년 지금까지도 유명한 '''헤딩 홈런'''을 만들어주기도 했다.[* 저 일이 있은 후 부상으로 잔여 시즌 출장을 못했다. 이유가 저 헤딩홈런 하나 때문만은 아니고, 팀에서 내보낼 투수가 없자 칸세코가 갑작스럽게 교체 투수로 투입되었다가 팔에 무리가 와서 전력에서 이탈한 것이다.] 그로부터 14년 후 그리고 26년 후 한국에서도 각각 [[김주찬|비슷한 상황]]과 [[신본기/2019년|MLB닷컴 뉴스]]로 재현되었다. 젊어서 잘나가던 시절엔 뛰어난 성적에 화려하고 역동적인 플레이스타일, 우람한 체구와 준수한 외모, 타고난 스타성을 모두 갖춘 [[엄친아]]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으나 이후 방탕한 사생활로 인해 성적의 기복이 심했다. 이 때문에 92년 8월 [[텍사스 레인저스]]로 트레이드 된 이후 [[보스턴 레드삭스]](1995~96)-오클랜드(1997)-[[토론토 블루제이스]](1998)-[[탬파베이 레이스|탬파베이 데블레이스]](1999~2000)-[[뉴욕 양키스]](2000)-[[시카고 화이트삭스]](2001)를 돌아다니는 [[저니맨]] 생활을 하였다. 저런 역마살에도 2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는 장타 능력을 보여주었다. ~~약쟁이라 아무 의미 없지만~~[* 이 저니맨 생활 와중 1998년 토론토에서 그의 홈런 수가 갑자기 23개에서 46개로 폭등하는데, 이유는 뭐 다 알듯. 참고로 이 당시 칸세코의 팀메이트가 바로 [[로저 클레멘스|그 분이다...]]. ]자기관리만 잘 되었다면 [[명예의 전당]]까지 노려볼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인물이었다. 실제로 [[오클랜드 애슬레틱스]]에서 보내던 전성기 시절 그는 정말 '''아름다운''' 외모와 외모 이상의 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